- [석율그래]기억의 서랍 03 - 샘플
- TEXT/미생
- 2015. 1. 6. 22:03
++3/29 미생 쁘띠 온리전에서 발행된 회지의 샘플 글입니다.
뒷이야기는 해당 책에서만 보실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8ㅅ8
※센티넬버스 설정 일부 차용한 AU. 싸이코매트리 장그래와 가이드 한석율이 나옵니다.
※BGM 교체했습니다.
벌써 3편이나 왔네요.
편당 분량이 적어서 조금 늘린다고 늘렸는데 올리려고 보니 여전히 적어서 좀 서러운...
줄 간격 태그가 아무리 해도 씹혀서 접기태그를 포기했습니다 또르르르
정지신호에 차가 멈춘 사이, 석율은 힐끗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장그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잠깐 담배를 태우며 카페에 가잔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지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다시 가게에 들어섰을 때, 그래는 진열장 사이를 돌아보고 있었다. 문을 등지고 선 자그마한 등이 신기루처럼 흐릿했다. 그 뒷모습을 마주한 순간 갑작스럽고 이상한 불안감이 석율의 뒷목에 확 끼얹혔다. 저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는, 그래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작은 짐승 같은 까만 눈이 동그래진 채 석율을 돌아보았다. 현실보다는 꿈 속에 세워져 있는 듯한 골동품점. 장그래는 그 비현실적인 공간의 중심축 같았다. 그러니까 혹시 이 남자는 가게 밖으로 나가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손목을 잡아 끌어 잰걸읆으로 가게 밖으로 나섰다. 뭐라고 할 만도 했지만 그래의 잔잔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다만 다급하게 꼬이는 발소리만이 등 뒤에 따라붙었다. 가게 밖에 나서서,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가빠져 버린 숨을 몰아 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장그래는 녹지도 재가 되지도 안개처럼 흩어지지도 않고 그저 태양빛을 받아 새하얄 뿐이었다. 그제서야 맥이 탁 풀리며 휴,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장그래씨. 오늘 가게 안 바쁘면, 내 카페 보여줄 테니 지금 나랑 안 갈래요? 그렇게 이상한 안도감에 사로힌 채로, 뱉을 수 있는 가장 직설적인 말로 카페에 와 달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 뒤의 어색함이란. 그는 이마를 짚었다. 말재주 하나는 타고났다고 자부하는 그에게 있어 그렇게 긴 침묵이란 오히려 말을 많이 해서 해서 목이 타는 것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그 뒤로 어찌어찌 무마하기는 했지만, 그 순간만 생각하면 입 안의 침이 전부 마르는 느낌이었다. 좋습니다. 상쾌하기까지 했던 그래의 대답은 석율이 겨우 상황을 무마했다고 생각한 순간 돌아왔다. 그래는 놀라울 만큼 담담하게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거절당한 것으로 여기고 다음 계획을 짜고 있었던 석율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뭐라고 따질 말도 찾지 못하고 서 있는 사이 장그래는 가게를 정리하겠다며 들어갔고, 석율은 가게 밖에서 혼자 서서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 장그래가 가게를 닫고 나오기까지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곁눈질로 조수석에 파묻히듯 앉은 장그래를 쳐다보았다. 꽤 더운 날씨일 텐데도 구태여 후드를 쓰고 있었다. 에어컨 틀까요? 건넨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석율이 입을 다문 동안에는 장그래도 거의 말이 없었다. 라디오를 틀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클래식 음악이 든 CD를 재생시켰다. 그래가 힐끗 고개를 들어 석율을 쳐다보았다. 모차르트네요. 왜요, 이런 거 듣는 거 의외에요? 아뇨. 저도 좋아해서. 그럼 가게에 모차르트 틀어봐요. 나름 어울리는데? …괜찮네요. 석율은 바이올린 선율을 콧소리로 흥얼흥얼 따라 불렀고 그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필요 이상의 말은 잘 하지 않는 성격인 것 같았다. 석율의 카페는 번화가에 있어서 외진 곳에 위치한 그래의 가게에서는 차로만 20분이 걸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그래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장그래씨? 일어나요. 다 왔어요."
"……아, 미안합니다. 깜빡 잠들어서."
"괜찮아요."
석율이 씩 웃어보였다. 쉽사리 뺨이 붉어지는 얼굴이다. 그 수줍은 표정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예쁘네요. 문득 제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래가 말했다. 잠시 후에야 그것이 석율의 카페를 보고 한 말임을 깨달았다. 전체적으로 모던한 분위기로 무장한 석율의 카페는 다소 정신없어 보이는 석율의 복장과는 꽤 상반된 이미지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뻐요. 홀린 사람처럼 가게 입구의 목제 테라스와 가벼운 도트무늬 장식이 들어간 간판을 돌아본 그래가 말했다. 진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되려 제가 머쓱해져서, 석율은 손을 입가로 가져가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자자, 안은 더 멋있으니까. 이제 들어가시죠, 손님. 특별석으로 모시겠습니다."
과장된 동작으로 문을 열어젖히고, 여성을 에스코트하듯 상냥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래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석율이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카페는 제법 널찍했고, 내부 인테리어는 전반적으로 차분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연스러운 베이지 톤의 벽과 바닥, 그리고 목제 가구들이 정갈하게 열을 맞춰 서 있었다. 벽에는 기본적으로 무늬가 없었지만 간간히 현대미술풍의 그림들이 걸려 있어 지루한 느낌은 없었다. 천장으로부터 뻗어내려온 조명갓에 박힌 도트 무늬가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 위로 깔린 발랄한 음악이 주인의 정서를 보여 주고 있었다. 평일 낮 시간이라 얼마 되지 않는 손님들만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그들은 카페로 들어서는 석율과 그래를 힐끗 쳐다보았을 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게를 맡겨 두었던 아르바이트생만이 쪼르르 달려와 인사했다. 석율은 그래를 카운터 앞에 붙은 자리로 안내했다. 커피를 타면서도 계속 대화를 나누려는 속셈이었다. 의자를 좀 더, 편한 걸로 바꿔야겠다. 오래 앉기엔 불편한 구조의 카운터 앞 의자를 보며 생각했다.
"어떤 커피 좋아해요? 뭐든 말만 하시라. 아, 밀크티도 됩니다. 아니아니, 아까 커피는 마셨으니 주스가 좋으려나?"
"석율 씨가 자신있는 거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내가 자신 있는 거요? 여깄는 메뉴 다 자신있지, 나야."
뻔뻔하기까지 한 대답에, 푸핫, 그래가 웃음을 터뜨렸다. 애교살이 많은 순한 눈이 부드럽게 접혔다. 도톰한 입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허공을 움직이던 석율의 손이 어색하게 멈췄다. 새하얀 얼굴 위로 부서지는 인공 조명이 눈부셔 잠깐 이마를 찡그렸다. 아, 미안해요. 비웃은 거 아니에요. 한석율 씨 정말 재밌는 사람이네요. 멀거니 눈만 꿈벅이는 석율을 눈치챈 그래가 맨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잠시 벙 찐 얼굴을 하고 있던 석율은 금세 원래 페이스로 돌아왔다. 커피 부담스러우면 오늘은 레모네이드 마셔요. 그리고 다음에 와서 꼭! 갓 내린 커피도 맛보시고. 부산스레 레몬과 과즙 짜는 도구를 꺼내며, 그가 말했다. 손가락이 쓱, 그래를 가리켰다가 다시 부산스레 움직인다. 좋아요. 그래의 대답이 떨어지자 그는 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래는 가만히 턱을 괸 채 가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얌전한 시선을 내리깐 채로 테이블이며 찻잔들을 만지작거리는 손끝이 새하얗다. 유독 그 골동품점에 있으면 한낮의 거리를 걷다 꿈 속에 잘못 발을 들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가게 밖에 나와 있어도 장그래에게는 곧 사라질 것 같은 비현실성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손목을 잡아당겨 그의 실존을 확인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것을 꾹 참았다. 사라질 리가 없는데. 움작거리던 손을 모아 주먹을 쥐었다. 생 레몬을 짜서 만든 레모네이드를 건네자, 받아들고 마신 그래가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
"왜, 별로예요?"
"아뇨, 셔서. 근데 맛있어요."
"맛있단 말로는 부족하죠. 아주 톡톡 쏘는 게 섹시하지 않습니까?"
섹시, 라는 말에 그래는 다시 표정을 찡그리다가, 아 셔서 그럽니다. 하고 툭 내뱉었다. 긴 듯 아닌 듯 성질머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석율은 별로 개의치 않고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야기거리가 마르지 않는 사람이라, 말수가 극단적으로 적은 그래의 눈에는 제법 신기했다. 그는 카페 사장 답게 그래의 가게에서 이런저런 도자기들을 제법 사 갔는데, 그것들은 카운터 뒤의 찬장 위에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현대적인 분위기의 카페에서 튈 법도 하건만 과연 석율의 말대로 그다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안목, 안목 하더니 본인이야 말로 안목이 괜찮지 않나, 생각했다. 석율이 서비스 운운하며 직접 구운 커피와 과일주스를 추가로 내 주었고, 그래는 그것을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다. 거봐,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알겠어요? 손사래를 치는 그래를 향해 석율이 피식 웃어 보였다. 나중에 또 와서 팔아달라고 미리 빚 달아 두는 겁니다. 단골 만드는 데는 아주 이거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짓는 미소가 뻔뻔한 것인지 아니면 상냥한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래는 카페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석율은 그래에게 기어코 도장이 찍힌 카페 마일리지 카드까지 쥐어주었다.
"오늘 정말 실례 많았습니다. 그만 가볼게요."
"아, 내가 안 데려다 줘도 되겠어요?"
"…괜찮습니다. 아마."
"아마는 뭡니까."
"……."
"검색해 봤는데, 카페 바로 앞에서 지하철 타시고 XX역에서 내리시면 되겠더라구요. 뭐하면 오늘은 다시 데려다 드릴까? 내가 억지로 데려온 거니까 끝까지 책임은 져야죠."
"아닙니다. 오늘 너무 폐를 끼쳐서."
"폐는 무슨. 나야말로 고마웠어요. 아, 그러면 장그래씨, 나한테 문자 한 통만 보내줘요."
"예?"
"번호 저장하게요. 뭐하면 지금 찍어줘도 좋고."
미소띤 얼굴로 내미는 휴대폰을 눈만 깜박거리며 쳐다보았다. 얼른. 어색한 손놀림으로 번호를 찍어서 건넸다. 명함까지 줬는데, 내 번호 저장 안 했구나. 뭐 그렇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래의 귀가 달아오른 것을 보고, 석율은 다시 피식 웃더니 얼른 메세지 하나를 전송했다. 「낭만카페 한석율입니다. 이번엔 저장하십쇼^-^」 그래의 휴대폰이 깜박거리며 울렸다. 역까지 바래다 주겠다 우기는 것은 것은 결국 거절하지 못했다. 마감까지 아르바이트생에게 떠넘기고는 일방적으로 쫓아온 탓이었다. 들어가서 문자해요. 전화면 더 좋고. 개찰구 너머에 선 석율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고맙습니다. 작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래의 손에는 구태여 석율이 쥐어준 수제 쿠키가 한 봉지 가득 들어 있었다.
*
지하철은 항상 지나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으로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늦은 시간이라 조금은 견딜 만 했다. 머릿속에 달려 들어오는 소리들을 흘려들으려 애쓰며 구석진 자리에 구겨지듯 앉았다. 각기 다른 시간대에 지하철을 지나친 잡상인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웅웅거렸다. 후드를 뒤집어 쓴 채 눈을 꽉 감았다. 오랜만의 외출 탓에 몹시 피곤했다. 석율이 손가락 끝으로 짚었던 이마가 이상하게 근질거리는 기분에 자꾸 제 손으로 그 곳을 문질거렸다. 억지로 눈을 감으려 노력하는데, 문득 휴대폰 알람이 울었다. 한석율이었다. 집에 가서 문자하라느니 마치 연락을 기다릴 사람 처럼 굴더니,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앉기가 무섭게 귀신같이 문자가 날아든다. 자기가 들어가면 문자하겠다는 말이었나. 그는 눈을 깜박거리며 액정 화면을 바라보았다.
「앉았어요? 하긴 이 시간이면 서서 가진 않겠다, 그쵸.」
「모차르트 좋아한다면서요? 들으면서 가요.」
짤막한 메시지와 함께 동영상 링크가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서툴게 자판을 찍어 보내자 웃는 이모티콘이 돌아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에 정신을 집중했다. 사방을 채운 산만한 소음도 집중할 거리가 생기니 조금 견딜 만 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가게에 음악을 트는 게 좋을 지도.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집에 도착해서는 씻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오랜만의 깊은 단잠이었다. 잠깐 꾸었던 꿈에는 한석율이 나왔다. 그는 여러 친척들에게 정성껏 편지를 쓰고 있었다. 소파 앞 탁자에는 잘 포장된 머그컵들이 쌓여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일어났어요? 아침은 드셨구?」
「네.」
「와, 성실하시네. 난 방금 일어났어요. 아침은 뭐 먹어요? 나는 아침에 밥을 영 못 먹어서, 우유 한 잔 마시고 이따 브런치 할 것 같은데.」
「아, 장그래씨 브런치 먹어봤어요? 느끼한 거 잘 못 먹나? 담에 오시면 함 해드릴까.」
「여기 점심때 브런치 먹으러 오는 사람도 은근 많아요.」
아침으로 된장국을 끓여 먹고 샤워를 마치고 나와 잠시 매장 점검을 하는 사이 석율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가 잠시 대답을 고민하는 사이, 석율은 메시지 여러 통을 한꺼번에 두두두 보내버렸다. 그것이 평소 이야기 할때 쉴 새없이 말을 늘어놓는 석율의 모습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전화기 너머의 한석율도 면대면일 때의 한석율만큼이나 수다스러운 모양이었다.
「먹어 본 적 없습니다.」
「그럼 다음에 한 번 만들어 드려야겠네. 이거 뿅 반하시는 거 아닌가 몰라~ 요리하는 남자, 크.」
「아닙니다. 사먹을게요.」
「또 정 없이 구신다. 드셔 보시고 맛있으시면 또 드시러 오시면 되지. 소문도 좀 내주고.」
「어젠 석율씨가 만드시는 건 다 맛있다면서요.」
「그야 그렇지만, 뭐 취향이란 게 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전 강요하진 않아요. 그래씨처럼 아침에 꼭 된장국 먹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잖아.」
석율의 답장을 보고, 그래는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얼른 손가락으로 대화 로그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지만 아침밥으로 뭘 먹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메시지는 전혀 없었다. 때려 맞춘 건가? 아연해서 액정만 쳐다보고 있자니 금방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금 좀 놀랐죠? 때려 맞춘 게 아니고, 사실 내가 독심술 좀 해요. 하하하하.」
「실없는 소리 좀 그만 하시죠.」
「쌀쌀맞긴~ 그런 거 아닙니다. 아, 저 이제 가게 오픈해야 해서. 나중에 또 연락할게요.」
그 메시지를 끝으로 대화는 끊어졌다. 독심술은, 개뿔. 애먼 사람 머릿속을 강제로 들락거리는 것 만큼 정신력이 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는 손끝으로 콧잔등을 꾹꾹 눌렀다. 아직도 눈썹 사이만 온도가 높아서 간질거렸다. 이마를 짚고선 능청스레 웃던 얼굴을 떠올리다가 눈을 꾹 감았다. 가게 문을 열고, 물건들을 정리하고 닦다 보면 오전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유독 먼지 쌓인 선반을 닦고 허리를 펴니 11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점심을 먹기는 애매하고, 차나 끓여 마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엌으로 향했다. 포트에 물을 데우며 컵을 고르다 석율이 주고 간 머그 앞에서 손이 멎었다. 그래의 다른 식기들과는 명확히 다른 발랄한 색상의 컵을, 잠깐 고민하다가 집어들었다. 지잉, 휴대폰이 깜박였다. 큰 접시 위에 오믈렛과 소시지, 샐러드가 먹음직스럼게 담긴 사진이 전송되어 있었다. 「완전 끝내주죠? 식욕이 막 끓어오르죠? 일주일 내 방문하신 장그래씨에겐 특!별!히! 무료시식의 기회가!」그리곤 웃는 이모티콘. 하여간, 낯 뜨거운 사람이었다. 손가락이 하릴없이 자판 위를 헤매다가 맛있게 드십시오, 하고 딱딱한 답변만을 보냈다. 머그에서 티백을 꺼내어 버리고, 휴대폰을 가지고 카운터 자리에 앉았다. 석율이 어제 건넸던 쿠키를 꺼내어 씹었다. 적당히 바삭바삭하고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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