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율그래]澳門玫瑰(오문매괴:Macao Rose)
- TEXT/미생
- 2015. 1. 23. 20:45
++3/29 미생 쁘띠 온리전에서 발행된 회지의 샘플 글입니다.
뒷이야기는 해당 책에서만 보실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8ㅅ8
한석율이에게 애인이 생겼다더라, 하는 소문이 澳門(아오먼) 뒷골목 구석구석에 짜아하니 퍼지는 데에는 채 사흘이 걸리지 않았다. 그 계집 치맛보에 대가릴 처박고 나올 줄 모르던 好色漢(호색한)에게 애인 하나 생긴 것이 무에 대수냐, 싶을 것이나 그가 애인을 들이고는 기방이며 주점에 걸음을 뚝 끊었다는 데에야 호기심이 동하지 않는 이가 오히려 드물었다. 한석율이가 누구인가,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아오먼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三合會 新義安(삼합회 신의안)의 우두머리인 한 대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아할 막내아들이 아닌가. 본처 출신 두 아들과 달리 어미를 닮아 용모가 곱상한 청년은 일찍부터 제 입지를 알아 허투루 나대는 법이 없이 주어진 돈과 시간을 제 의무인 양 허비했다. 논다니들의 가슴께에 고개를 처박고 얼간이 짓을 할 때마다 탐욕스런 계모와 이복형제들은 코웃음을 쳤다. 저는 후계도 재산도 관심이 없으니 그저 지금처럼 계집이나 끼고 놀게 해 주십사 머리를 조아렸을 때에는 절로 고개가 뻣뻣해졌다. 그들은 언제고 마음을 바꾸어 손바닥으로 벌레를 잡듯 석율을 죽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를 함부로 해내기란 꺼림칙한 일이었다. 석율의 어미는 출신도 불분명한 밀입국자였고 한 대인이 석율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오늘내일하였다. 조직 내에서 뿌리내릴 곳도 없는 천덕꾸러기인 석율의 뒤를 봐 줄 사람이야 어차피 제 친부밖에는 없어서, 그는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못할 망나니 한량으로서 제 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혼례조차 치르지 않고 기방만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 그를 한심하게 보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의 주변에 모이느니 입 안의 혀 같은 奸侫輩(간녕배)의 무리였으나 석율은 그런 엉터리들과 실없이 어울려 히히덕거리기 바빴다. 최근에는 노름에마저 손을 대어 판돈만 미제 달라로 넉 자리 수를 날려먹었다느니, 조직에서 유통하는 대마니 히로뽕 따위에 손을 대었다느니 하는 말이 나돌았다. 그가 지난 십여년간 벌이고 다닌 奇行談(기행담)만 해도 하룻밤을 꼬박 새울 만치로 쌓여 있었다. 둘째 형이 사고로 아내를 잃고 외팔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계집과 놀아나다 뒤늦게 헝크러진 차림으로 장례에 나타나는 바람에 문전박대를 당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질긴 안주감이 되어 주었다. 저놈 저것이 집안 망칠 波落戶(파락호)가 아니고 무어냐, 조직의 더러는 손가락질했고 더러는 그의 팔난봉을 좋은 구경거리쯤으로 삼았다. 그 허랑방탕한 석율의 머리꼭지를 잡아 돌려놓은 애인의 정체에 대하여 온 시장바닥이 입방아를 찧어댔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 대단한 조직의 고명딸인데 성질머리가 독사 같을 것이라는 둥, 천하에 둘도 없는 절세미녀일 것이라는 둥, 오만 가지 소문과 십만 가지 풍문들이 출처도 없이 만들어져 사람들 사이를 떠돌아다녔다. 얼굴도 나이도 불분명한 석율의 애인은 아오먼 뒷골목 주점에서 가장 불티나게 팔리는 술안주였다. 그 정체에 걸린 판돈만 해도 젊고 잘 나가는 기녀 한 명을 기루에서 빼 올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소문만 무성하던 애인의 정체는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밝혀지고 말았는데, 바로 석율이 제 생일잔치에 그를 허리춤에 끼고서 나타난 까닭이었다.
그날따라 그는 쓰리피스 정장까지 때깔나게 갖추어 입고는 시종 허리춤에 사람 하나를 끼고서 사람들 틈바구니를 누비었던 것이다. 아오먼 최고의 양아치답게 전신에 점박이 무늬가 박힌 양복 상하의며 목에 두른 꽃무늬 스카프가 보기만 해도 야단스러웠다. 늘상 포마드를 발라 칼같이 빗어 넘기는 오대오 머리 아래의 귀 밑 단발은 차라리 새침하였다. 그러나 장바닥에서 高粱酒(고량주)를 걸치며 공내기를 하던 그 누구도 석율이 옆구리에 찬 자가 누구인지 묻지 못했다. 쏙 들어간 허리가 한 줌은 될까, 낭창한 몸을 한 그는 척 보아도 이 바닥에 흔한 얼굴은 아니었다. 외지인인 것인지 앵두알마냥 붉고 톡 튀어나온 입술을 꼭 닫고 말이 없다가, 석율이 이따금 귀엣말을 할 때에만 무에라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속삭이듯 답하는 것이었다. 뭉툭한 붓으로 그려낸 듯 눈매며 콧망울이며 얼굴선까지 모두 둥글둥글했다. 길게 기른 새카만 머리칼은 허리까지 덮여 석율의 팔뚝 위로 살랑거렸다. 머리카락 색과는 대비되는 낯빛이 희고 창백하여 피부 아래의 실핏줄이 드러나 보일 듯 하였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둥근 귀는 耳釘(이정)의 흔적조차도 없이 깨끗했다. 마른 몸에 착 달라붙는 旗袍(치파오)는 희었고 그 위로 붉은 玫瑰(매괴) 자수가 흐드러져 어지러웠다. 체구에 비해서는 마른 어깨가 각지고 가슴이 판판하였지만 옆으로 트인 스커트 사이로 보이는 흰 다리는 늘씬했다. 그는 익숙지 않은 여성용 구두를 신고서 걸음을 뗄 때마다 비틀거렸다. 그래, 말하자면 여장을 하였으나 누가 봐도 명백한 사내였던 것이다. 개중에는 놀란 나머지 와인을 줄줄 흘리는 자도 있었다. 비, 비역……! 큰 소리를 내며 삿대질을 하던 사내는 다른 사내에 의해 발이 밟혀 질질 끌려갔다. 석율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에는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였다가 차츰 어수선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오직 괄시에 숨이 익은 석율과 그의 옆구리에 귀한 장식품처럼 붙은 청년만이 와중에 태연하였다. 노골적으로 따라붙는 호기심과 혐오 섞인 눈길에도 석율은 함박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옴폭 들어간 보조개 골마다 즐거움이 가득 고여 있었다.
“小好(소호), 이쪽으로.”
造淸(조청)에 푹 절인 음성이다. 糖菓(당과)마냥 혀 끝에서 구르는 것이 달콤하였다. 어깨를 제 쪽으로 끌어당겨 쓰다듬는 손길에는 다정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눈을 내리깐 채 이마를 가까이해, 한참 蜜語(밀어)를 속삭인다. 별 반응이 없는 상대를 두고 혼자 목울대를 삼키며 키득거린다. 석율은 집중된 이목을 아예 보지 못한 양, 태연히 눈을 접으며 웃었다. 진한 펜으로 그려낸 듯 선명한 쌍커풀이 거푸 깜박였다. 소호라 불린 청년은 무표정하였으나 다만 분칠로 덮지 못한 귀 끝의 여린 살갗이 붉게 달아 있었다. 好(호)라니, 무엇에든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오묘한 어감이었다. 회장에 모인 사람 치고 석율이 계집과 놀아나는 것을 보지 못한 자가 드물었으나 계집에게조차 보이지 않았을 정도의 살가운 태도에야 굳은 얼굴의 간부들까지도 온통 웅성거렸다. 삼합회 내에는 알게 모르게 鷄姦(계간)하는 자들이 있어, 더러는 그 애인의 성별보다도 석율의 그런 모습에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파티가 시작할 시간에 이르자, 석율은 가벼운 걸음으로 코가 뾰족한 에나멜 구두를 흔들며 연회장 정면에 마련된 演壇(연단)에 올라섰다. 그가 옆구리에 철석같이 붙여 데리고 다녔던 청년은 연단 아래에 마련된 의자에 곱게 앉혀져 있었다. 한 대인의 권위만큼이나 사치스럽게 유리와 한지로 장식된 조명들이 그의 머리 위에서 반짝여, 검은 머리칼이 일견 갈색으로 보였다. 그려서 걸어놓은 것 같은 미소를 만면에 띤 채, 석율은 특유의 명랑하고 가벼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오신 여러분들께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의례적인 말이다. 석율을 축하해줄만한 이가, 적어도 그가 좀 전까지 한팔에 꿰어 다니던 청년이면 모를까, 장내에 없음을 석율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자신보다는 아비의 부와 권세에 등이라도 비벼보고자 모인 인물들이었다. 그는 눈주름이 잡히도록 웃으면서도 차가운 눈빛으로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경청하는 것 같은 표정이되 다들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흔한 인사를 늘어놓은 뒤 손을 들어 건배하고, 잔에 든 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단숨에 목청을 타고 넘어 머리로 치달아 오르는 술기운이 썩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었고, 늘 벌을 서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던 머리 아픈 행사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오늘은 여러분께 축하받을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 같지만, 저에게 드디어 情人(정인)이 생겼습니다. 저기 보이는 미스터 장입니다. 남자 정인이라 놀라신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만, 저는 그와 정식으로 婚禮(혼례)도 올릴 생각입니다.”
말은 청산유수로 나갔고, 연회장이 술렁이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사람들이 토끼눈을 하고 석율과 한 대인의 눈치를 번갈아 살폈으나 한 대인도 석율도 이미 예상했던 청중의 반응이었기에 큰 동요가 없었다. 한 대인의 부인 역시 이미 전해 들은 바가 있어, 석율을 부호에게 장가 보내지 못해 한밑천 챙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이로써 남자 베필을 맞게 된 석율이 영영 조직의 후계 문제에서는 발을 뺀 것이나 마찬가지라 여겨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해했다. 한 대인의 경우에는, 그가 일평생에 유일하게 사랑했다던 여인의 눈을 그린 듯 빼어 박은 석율의 두 눈 앞에 들어주지 못할 청이 없었다. 매 해 생일마다 석율이 가지고 싶다 바란 것은 대체로 그의 손에 들어갔다. 이번 생일의 경우 그것은 석율이 파티 내내 보석보다도 소중히 품어 떼어놓질 않는 청년, 장그래였다. 멀기도 먼 조선 땅에서 흘러흘러 들어온 장그래는 현지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워하는 이름 대신 그저 예스 장, 아니면 장 호, 라고 불리곤 했다. 석율은 그 이름이 하나하나 예쁘다며 애정을 담아 본명을 부르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小好(소호)라 부르길 즐겼다. 그래에게도 저를 燏燏(율율), 아니면 小燏(소율)이라 불러 달라 청했다.
*오월암( @satuki_yami ) 님 리퀘-마피아, 치파오 입은 장그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문(아오먼) : 마카오를 뜻하는 중국어. 매괴: 중국어로 장미를 말합니다.
*쓰는 사람이 마피아를 잘 몰라서 오류가 많을 수 있으니까 너그러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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