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율그래]오문매괴 샘플2


++3/29 미생 쁘띠 온리전에서 발행된 회지의 샘플 글입니다.

뒷이야기는 해당 책에서만 보실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8ㅅ8


역시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4.

석율이 본격적으로 분위기 수습에 나가면서 조직 내의 권력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상현의 인기가 하락함과 함께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큰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석율은 지금까지 보여준 한심한 모습이 無色(무색)하리만치 일처리가 빠르고 시원시원했다. 그를 망나니 私生兒(사생아)쯤으로 여겼던 조직의 간부들은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그는 패밀리 관리 하의 수많은 카지노와 술집 정세에 빠삭했는데, 지금껏 손님으로서 대부분의 영업장을 직접 방문하여 둘러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현장 구석구석을 돌며 거대한 조직 하의 수많은 중간보스와 행동대장과 조직원 개개인을 파악하고 있어, 간부들과의 중간 다리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해냈다. 중간 간부 이하 계급의 석율에 대한 지지도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자연스레 고위 간부들도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석율은 간부급 인사들의 의견을 잘 수용하는 편이었다. 특히 자신의 지식이 짧은 영역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고위 간부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자신의 입맛대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몇몇 중립 인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상현은 어릴 적부터 조직의 후계자로서 키워진 탓에 오만하고 고집이 세 다루기가 쉽지 않았으나 석율에게는 그런 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차라리 다루기 쉬운 석율이 후계자가 되었을 때 그들이 더 편하지 않겠는가 하는 셈을 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석율이 해내기에 벅찬 업무들은 고위 간부들이 앞장서서 맡았다. 물론 이 참에 자신의 세력을 조금씩이나마 넓혀보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 중에도 2인자이자 조직의 고문이었던 김부련은 사실상 보스 대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좀 편하게 지내나 했더니 무슨 고생이야 이게, 그는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간만의 현업이 즐거운 눈치였다. 한때 그의 麾下(휘하)에서 일했던 부두목인 선지영과 오상식 일파가 특히 패밀리 내의 소란을 제압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반란은 한 대인으로부터 꽤나 신임을 받아 온 부두목 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강했던 박종식을 중심축으로 하여 발생했다. 혼외자인 한석율이 후계자 노릇 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고, 한상현을 다시 찾아 데리고 와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내가 그 자식 그럴 줄 알았다. 늘 종식과 부딪히던 상식은 반란 소식을 듣자 마자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묘한 프라이드와 직업윤리를 지닌 상식은 노골적으로 뇌물을 받거나 괜한 폭력을 휘둘러 세력 자량을 하는 부류들을 혐오했는데, 종식이 딱 그런 종류의 부두목이었다. 부련과 상식 쪽 조직이 규모는 더 컸지만 종식을 따르던 무리 중에 조직의 최정예들이 잔뜩 모여 있다 보니 항쟁은 지지부진했다. 마카오 도심에서는 사흘이 머다 하고 총격전이 벌어졌다. 도시의 분위기는 살벌했고 주민들은 외출을 꺼렸다. 믿을 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달리다 보니, 석율이 한량 시절 친하게 지냈던 젊지만 계급이 낮은 조직원들 중 일부가 拔擢(발탁)되어 중임을 맡게 되었다. 특히 항구 관리 쪽에 소속되어 있던 강해준과 장백기가 그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종식의 왼팔 노릇을 하던 서진상의 집에 수하 몇 명만을 이끌고 잠입해 그를 생포해 오는 무쌍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조직 내의 소란을 정리하는 일과 동시에 암살의 배후를 캐내는 일도 진행되었다. 영후의 방에 침입했던 괴한은 생포되었지만 어수선한 틈을 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사실상 배후 수색은 백지화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대인은 의식을 되찾았지만 총에 맞아 기절하는 바람에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말했고, 회복이 더뎌 크게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백방으로 뒷조사를 하고는 있었지만,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 알 수 있는 것은 습격 당시 방의 정황 정도였으나 그나마도 별 단서는 없고 의문점만 산더미였다. 방에는 외부로부터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었다. 한 대인의 방 유리는 간단히 깨지지 않는 재질인데다가 층수가 높고, 안에서밖에 열리지 않는 창문은 잠겨 있던 상황이라 외부에서 침입했다면 흔적이 남아야 했다. 낯선 사람이 보스 패밀리만 거주하는 건물을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욱이 건물 중심부의 방 중 한 대인과 장그래가 대국하는 시간대를 노려 암살을 시도한 점, 다른 곳에서는 전혀 몸싸움이 없었던 점 등등, 석연치 않은 점들은 수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부인, 특히 최측근의 소행을 의심했다. 상현도 의심의 도마 위에 올랐고 지금은 신임 받고 있었지만 석율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가납시니들은 이미 그 배후를 놓고 짭짤한 내기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라고는 정황증거일 뿐 물증은 전부 사라진 상태여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장그래가 의식을 되찾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장그래는 열흘 가까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석율은 아예 그래의 병원이 있는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어릴 때부터 그래를 거두어 키웠던 부련, 상식, 동식, 관웅, 그리고 석율 자신이 얼굴을 아는 담당의와 부장 간호사 이외의 사람은 누구도 병실에 들여보내지 않았다. 언제 2차 암살 기도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만전을 기해 나쁠 것이 없었다.

 

한편 상현은 한 대인의 피격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바로 최측근과 함께 말레이시아 쪽으로 잠적해 버렸다. 이미 아버지의 부재시 조직을 보전해야 할 후계자가 가장 먼저 내뺐다는 사실만으로도 비난받기에는 충분했지만, 그가 사라지자마자 중간 보스 이하급에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태껏 참아 왔던 상현의 傲慢放恣(오만방자)함에 대한 불만이 불거져 나왔다. 마카오 땅에는 이미 그를 변호해 줄 만한 인사는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후계자라는 이유로 묵인되었던 상현의 모든 언동이 다시 도마 위에 올라, 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었다. 도피 중에 소식을 전해 받은 상현은 분통을 터뜨렸다.

내 면전에서는 한 마디도 못할 잡것들이.”

그는 와인 잔을 벽으로 내던지며 신경질을 부렸다. 굳이 암살의 위험에 노출되어 좋을 게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한 행동이 역으로 발목을 잡고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야 아랫놈들로 족하고, 자신은 사태가 마무리되면 나타날 생각이었다. 본디 이런 일에 귀한 몸은 빠지고 아랫것들이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범 없는 굴에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더니 감히 자격도 능력도 없는 놈이 후계자인 양 자리를 꿰차고, 우스운 노릇이었다. 버러지만도 못하다 여겼던 놈이 제가 안간힘을 써 독차지한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발을 딛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했다. 자신과 둘째 정현을 비교하던 놈들을 처리하고 정현이 놈을 반병신 만드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것이 안일했는지도 몰랐다. 그는 최대한 빠른 배편을 찾아 귀국 일정을 정했다. 내 돌아가기만 해봐라, 한석율이 그 잡것부터 잡아다 四肢(사지)屠戮(도륙)낼 테다, 하며 이를 득득 갈았다.

특히 상현의 분노는 장그래에게 향했다. 장그래가 나타나고 모든 일이 꼬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인지도 모르는 년이, 감히. 대개 잡것들이 그렇듯 몇 번 모욕을 주면 알아서 물러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장그래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뻔뻔한 놈이었다. 하긴, 그래야 달릴 거 다 달고서 뒤나 대 주는 짓을 하는 것이겠지. 심지어는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 몰라도 아버지까지 그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여서, 그는 더욱 초조해졌다. 세상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마카오를 대표하는 한 씨 집안에서 더러운 호모자식들이 활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아예 누명을 씌워 없애려 했다. 한 대인과 그가 독대하는 상황을 노려 자객을 보내면 장그래가 쉽게 덤탱이를 쓸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라도 일이 완전히 꼬여, 그것이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혹시나 남았을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우선 자리를 떴다. 자신이 배후인 것이 들통나면 입지가 곤란해 질 수 있었다. 다행히 배후를 캐기 전에 고용한 암살자를 처리하는 데에는 성공했고, 조직 내의 소요 사태로 인해 석율의 관심을 다른 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이제는 장그래를 제거해야 했다. 그 녀석이 깨어나면 무슨 소리를 할지 몰랐다. 마침맞게 여태 혼수상태이니 사람을 보내 처리하도록 하고, 당당히 귀환해 모든 게 한석율의 자작극이었노라 일을 꾸며내면 그만이었다. 지금이야 한석율의 사기에 모두 속아 넘어가고 있지만 자신이 아오먼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다 해결될 일이었다. 한석율 같은 애송이를 쫓아내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귀국에 앞서, 제가 데리고 있던 암살자 중 가장 유능한 두 명을 그래의 병실에 숨어들어가도록 지시했다. 석율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를 몰색하는 것 만으로도 병원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병원의 경계는 철통같았으나 파고들려고 마음 먹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지금껏 제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들을 수도 없이 해치워 온 상현이었다. 그가 거느린 충성스럽고 유능한 히트맨만 해도 제법 많았다. 잔챙이 한 마리 지키는데 여간도 공을 들였군, 병원 경계가 삼엄하다는 말에 그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경호원이 많으면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니 오히려 일이 쉬웠다. 교대하는 것을 틈타 사람 한 명을 슬쩍 끼워넣으면 그만이었다. 곧 그놈 모가지 잘린 걸 구경할 수 있겠지, 그는 귀국할 준비를 하며 싱글벙글했다. 이미 석율의 죄상을 폭로하는 위조 자료들까지도 준비된 상태였다 제깟 놈이 뛰어 봤자 벼룩이 아닌가. 감히 지금껏 좋은 옷 받아 입고 좋은 음식 받아 먹은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지는 못할 망정, 혼례를 올리겠다는 것도 모자라 아들 행세라니 제 분수를 모르는 데도 정도가 있었다. 진창에서 굴러먹던 놈을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하는 격이었다. , 그것도 곧 끝나고, 한석율은 제 분수에 맞는 최후를 맞이할 테지만.

 

5.

약혼 준비는 결코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출신성분조차 불분명하고 성별조차 남성인 장그래를 보스 패밀리로 섬겨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하는 조직원들도 없잖아 있었다. 특히 맏아들 한상현은 그래를 아주 못마땅히 여겼다. 그는 본디 비역질을 嫌惡(혐오)하기도 했거니와 알아주는 돈벌레였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禮式(예식)이며 제가 물려받을 유산이 감소하는 점까지, 그가 장그래를 눈엣가시로 여겨야 할 이유야 積如丘山(적여구산)이었다. 물론 이러한 반발은 석율과, 특히 그가 뒤에 업은 한 대인의 의지 앞에서는 완전히 黙殺(묵살)되었다. 한 대인의 부인마저도 혼인을 黙過(묵과)하면서, 오로지 상현만이 시도 때도 없이 장그래에게 시비를 걸며 노골적인 敵愾心(적개심)을 드러내었다. 자연스레 그를 따르는 조직원들을 중심으로 석율의 혼약에 반대하는 여론은 꽤 구체적인 형상을 띠었다. 개중에는 그래를 향해 입에 담기 힘든 暴言(폭언)을 퍼붓는 무리들도 있었다. 한 번은 혼자 정원을 산책하는 그래의 머리 위로 汚水(오수)가 쏟아진 적도 있었다. 냄새 나는 물을 온 몸에서 뚝뚝 흘리는 장그래를 보고, 석율은 펄쩍 뛰었다.

제가 걸레 빤 물을 뒤집어썼다 해도 그렇게 화를 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장그래를 강제로 욕실로 끌고 가 옷을 벗기도 전에 욕조에 던져 버리고 그 위로 물을 틀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도 장그래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석율이 제 얼굴에 오물을 맞은 사람처럼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두 뺨이 상기되어 씨근거리는 그를, 장그래는 남의 일인 양 냉담하게 쳐다보았다. 씻겨주겠다 우기는 것도 거절하고 젖어버린 옷을 벗었다. 석율은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긴 채 손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그는 그래가 옷을 벗는 동안 구두조차 벗지 않고 산만하게 욕실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보폭이며 팔을 흔드는 동작이 평소보다 반품씩 컸다. 어떻게 잡습니까? 제가 아무 것도 못 봤는데. 당장이라도 범인을 수색해야 한다며 열을 올리는 그에게 그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화도 안 나?”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내면 어떻게 삽니까?”

너야말로 참기만 하면 다 별 일 아니야? 참을 일이 있고 안 참을 일이 있잖아. 이건 단순하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물이 아니라 칼이 떨어졌으면 어떻게 됐겠어?”

칼이 아니었으니 된 거 아닙니까. 이런 일로 수선 피우는 게 저 쪽에서 원하는 바일 겁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석율이 버럭 짜증을 냈다. 시계를 풀어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성킁성큼 다가와 바구니로 물을 떠서 그래의 머리에 끼얹었다. 그래는 얼굴로 흘러내리는 물을 문질러 넘겼다. 쳐다보는 시선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석율은 넥타이를 두어 번 잡아당겨 정리하고는 한숨 섞인 말을 뱉었다.

네가 죽으면 다 의미 없는 짓이야.”

저 그렇게 쉽게 안 죽습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장그래.”

물러나세요. 옷 젖습니다.”

상관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