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한석율이 장그래의 가게를 찾은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란 인간이 내다 팔아버린 어머니 유품의 행방을 물어물어 도착한 곳이 그 작은 골동품점이었다. 그 곳에 가게가 있다는 걸 모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울 만큼 허름한 장소에 딸랑이는 종소리와 함께 발을 들였다. 그리고 주인을 찾는 목소리에 발을 걷어내며 나타난, 말끔한 선의 소년같기도 하고 청년같기도 한 얼굴과 마주한 순간 그는 아주 잠깐, 환상소설의 첫 페이지를 연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만큼 골동품점 안의 장그래는 비현실적이었다. 퀴퀴한 먼지 냄새가 날 것 같은 그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청량함이 장그래에게는 있었다. 한여름임에도 묘하게 서늘한 공기가 맴도는 그 공간에 서서, 석율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리고 우두망찰했다. 초조하게 혀로 입술을 축이고, 괜한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먼 발치의 시계가 째각이는 소리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었다. 찾으시는 게 있으신가요, 그런 말을 건넬 법도 했으나 장그래는 마치 그 가게의 배경인 양 가만히 석율을 응시하고 있었다. 새카만 눈동자가 밤처럼 짙었다. 저기요, 겨우 목소리를 내어 입을 열 즈음, 그는 놀랍게도 계산대 뒤의 선반에서 자신이 찾던 물건을 꺼내 내려놓았다.
"어, 이걸 어떻게."
"소중한 물건 같아서… 주인이 찾으러 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석율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것을 손에 쥐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상태가 좋았다.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닦인 목걸이 안에는 어린 소년과 젊은 여성이 함께 찍은 빛 바랜 사진이 들어 있었다. 엄청난 구식 물건, 불필요한 고물이라고 아버지가 내다 버린 그 목걸이에 든 것은 석율이 어머니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분명 고장난 줄 알았던 시계도 멀쩡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몇 번 쥐었다 폈다 하다가,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저, 그러니까, 어떻게 이걸 찾는 줄 아셨어요. 물음에, 젊은 골동품점 주인은 입을 다물었다. 값을 치르려는 그를 한사코 말리며, 원래 주인에게는 돈을 받지 않겠다 고집을 피웠다. 그래도 완전 새 걸로 만들어 놨는데, 수리비라도 받으라며 억지로 돈을 내밀었다. 그러면, 그마저도 거절당하자 석율이 오기에 찬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제 물건이 아닌 건 값 받으실 거죠? 그는 쏟아진 앞머리를 휙 넘기고, 휘적휘적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최대한 비싸 보이고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골라 담는 동안 조용한 시선이 그의 단발로 다듬은 뒤통수를 따라다녔다. 그 흔한 책조차 읽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뒤에 따라붙지도 않고, 고요히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이 더욱 그를 골동품점 주인과는 동떨어진 존재로 보이게 만들었다. 물건들의 가격은 석율에게 만족스러운 액수는 아니었으나, 작은 규모의 골동품점에는 충분한 수익이 될 정도였다. 그는 물건값과 함께 명함을 내밀었다. 그것마저 거절하기는 어려웠는지 결국 그는 그 작은 종이를 받아들었다. 색색의 도트로 꾸며진 명함에는 한석율이라는 이름과, 낭만커피, 라는, 촌스러운지 그렇지 않은지 가늠이 어려운 가게 이름이 적혀있었고, 뒷면에는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카페 하거든요. 요 앞 번화가."
"……."
"꼭 와요, …사장님."
"……장그래입니다."
"…그래, 꼭 와요, 장그래씨."
그는 당부하듯 덧붙였다. 당신 말대로 소중한 물건이니까, 나한테 답례 할 기회 좀 줘요. 그렇게 말하며 아이마냥 작은 그 손을 잡아당겨 움켜쥐었다. 어쩔 줄을 모르고 꼼지락대는 손가락의 감촉은 생각했던 대로 말랑했다. 저기, 장그래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우리 가게 오면 들어줄게요. 멋대로 말을 끊어버린다. 복잡한 감정을 실은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았다. 힘주어 잡았던 손을 풀어주고, 다시 붙잡힐새라 가게를 나섰다.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뒤로 하자, 마치 마법에서 풀려난 것처럼 더위가 그를 덮쳤다. 그제서야 돌아서서, 간판을 올려다 본다. 기억의 서랍. 그 이름이 퍽 어울려서 피식 웃고, 차에다 짐을 싣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장그래는 가게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으나, 묘하게 창문 안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한 개비를 다 태우며, 되찾은 시계를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렸다. 시계가 째깍거리는 감촉에 심장이 간지러웠다.
*
긴 단잠의 끝에, 장그래는 눈을 떴다. 간밤 내내 꿈을 꾼 것 치고는 상쾌한 아침이었다. 창가에서 지저귀는 새 울음소리가 부산스러웠다. 그는 커피를 끓여 홀짝이며,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아마도 꿈의 근원지일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오래 전 가게로 흘러들어온 그 목걸이를 수리한 것은, 알 수 없는 변덕 때문이었다. 그 목걸이로부터 읽어낸 기억이 너무나 따뜻해서, 왠지 그것을 낡고 초라한 채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목걸이의 주인이 찾아올 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상상한 것과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요란하게 치장한 외모가 말 그대로 치장이라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이미 그 목걸이를 통해 그의 내면을 훔쳐 본 다음이었으니까. 그는 후 한숨을 내쉬고, 명함에 적힌 한석율이라는 이름 석자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꼭 와요, 장그래씨.
당부하던 그 눈빛에, 심장이 멋대로 파문을 만들어낸다. 손을 잡힌 순간 영혼이 날뛰었다. 사방으로부터 들려오던 속삭임과 이명이 차단되고, 사위가 고요해졌다. 태어나 처음 겪는 적막에, 장그래는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을 해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제 손은 풀려났고 다시 온갖 소음들이 몰려들었다. 석율은 가게 문을 나선 후에도 한동안 그 앞을 서성였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그의 그림자가 어렸던 담벼락에는 약간의 담배 냄새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기묘한 설렘과 기대로, 고장나 정지한 줄만 알았던 심장이 뛰었다. 만날 수 있다는 기대조차 품어본 일 없는 '안내자'가 그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원치 않은 능력 탓에 시달려 온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줄 존재가 아닐까하는 기대감에 잠시 부풀었다.
그 수많은 불면의 밤들. 몸서리치며 깨어나 귀를 틀어막곤 했던. 침실을 오롯이 자신의 물건으로 채워두지 않으면, 수많은 소리와 이미지가 잠든 그래의 꿈 속까지 달려들었다. 사물의 기억을 읽는 그의 능력은 축복보다는 차라리 저주라고 보아야 옳았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숨도 쉬기 힘들었다. 스치는 옷깃 사이로 전해지는 소리, 소리들. 거추장스러운 타인의 마음 같은 것. 장그래는 인파의 한복판에 서면 자아를 잃어버렸다. 감당할 수 없는 소음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다, 떠밀려 나와서야 겨우 두 손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땀이 흥건한 손으로 얼굴을 닦다, 힘이 풀려 주저앉고는 했다. 그런 일을 여러 번 겪고 장그래는 외출을 꺼리게 되었다. 무더위가 지속되는 날씨에도 꽁꽁 싸매지 않고서는 단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틀어박혔다. 부모님이 물려 주신 골동품점과 그 곳에 딸린 작은 주거공간, 그리고 근처의 작은 가게들이 그의 생활반경의 전부였다.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은 대체로 오랜 시간만큼 바래 있었고, 또 그에겐 익숙한 것이어서, 그것들의 먼지를 닦아내고 선반을 정돈하는 작업들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따금 노인들이나 걸음할 뿐인 작은 가게는 큰 수입도 지출도 없는 채로 근근히 유지되었다. 그리고 장그래 역시 멈춰진 시간 속에 박제된 존재처럼 그 안에 머물렀다. 그는 그 시간들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랐고 그래서 망설였다. 이제 그는 자신의 작은 공간 밖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오래 그 작은 가게에 머물렀는지도 몰랐다. 망설이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결국 2주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때 장그래는 석율을 다시 만나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자신의 가게와, 가게를 둘러싼 그 작은 공간 속에서 너무나 편안해 구태여 나가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더러, 밖으로 나가는 순간 숨이 끊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비논리적인 상상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만난 석율이 자신의 안내자가 아닐까봐서, 그것이 그 날의 순간적인 착각일 것만 같아서,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주가 더 지나며 장그래의 기억 속에서 석율이 희미해져 갈 즈음, 석율이 다시 가게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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